2011년 2월 26일 토요일

원매 산문집 袁枚 散文集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청나라 중기의 문인인 원매의 대표적 산문을 담고 있다. 원매는 조용히 은신하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마음 가는 대로’ 자신이 좋아했던 것을 펼치고 살았던 이채로움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 책은 원매를 읽어가는 가장 중요한 밑절미인 ‘감정’을 움직이는 산문들과 원매의 취미나 학술 연구, 그리고 삶의 지향점들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산문들을 선별해 원매의 다양한 글을 맛보는 데 손색이 없도록 구성했다. 원매의 자유로운 사상을 통해 지금까지의 중국 고전에서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책 소개

깊이 병든 데카당스와 감추어진 가능성의 인물, 원매
일본의 중국 문학 연구자인 이나미 리쓰코(井波律子)는 ≪중국의 은자들≫[파주(坡州), 한길사, 2002]에서 그에 대해 “깊이 병든 데카당스와 감추어진 가능성에 대한 과감한 도전, 평생 이 양극단을 오간 원매는 중국의 수많은 은자들 중에서도 유난히 스케일이 크고 일종의 요기를 발산하는 괴물 은자”라고 평가했다. 그녀의 평을 통해서 우리는 원매라는 인간이 가진 이채로움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그녀는 두 가지를 축으로 원매의 인생을 갈무리하고 있다. 우선 깊이 병든 데카당스는 원매가 호화로운 원림, 곧 수원(隨園)에서 거듭 만찬을 열어 강남 명사들과 교류하고 수많은 첩을 거느리며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던 것, 그리고 전통 사회에서 서른 명이 넘는 여제자를 두었던 것과 여색뿐만 아니라 남색 또한 즐기며 화려한 애정 행각을 벌였던 그의 인생을 함축하는 것일 테다. 사실 이나미 리쓰코는 양극단의 또 다른 축으로 감추어진 가능성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거론하지만, 깊이 병든 데카당스에는 어느 때건 또 다른 탈주를 감행할 무궁한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원매의 당시 전통에 대한 부정, 사회적 금기에 대한 거부의 정서는 그런 점에서 그의 과감한 도전이면서 동시에 데카당스로 간주될 수 있는, 역시 원매를 구성하는 질료들이다. 18세기 중국 사회에서 원매는 어느 쪽으로건 쉽게 계열화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원매의 다양한 글들을 두루 접할 수 있는 진정한 선집
옮긴이는 자신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글들, 원매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을 주된 선정의 기준으로 삼았다. 옮긴이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글은 <만남, 그리고 이별>에 담긴 것들이다.
원매의 산문은 여태껏 우리말로 소개된 적이 없다. 국내에서도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길잡이의 역할도 떠맡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글들,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된 글들도 함께 선정했다. 더불어 적은 분량의 책이나마 원매의 글을 맛보는 데 손색이 없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글들을 소개하는 데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 책 속으로

卒時, 召枚訣曰, “吾將歸去.” 枚不覺失聲而慟, 太孺人訶曰, “人心不足, 兒癡耶? 天下寧有不死人耶? 我年已九十四矣, 兒何哭爲?” 擧袖爲枚拭淚而逝. 嗚呼痛哉! 人世以百齡爲上壽, 再假六年, 太孺人便符此數. 天下吝此區區者, 而不肯賜與耶? 抑去來有定, 未可强留耶? 不然, 則終是枚調護無方, 奉養有缺, 而致太孺人之沈綿不起也!

어머니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나를 부르시더니 “나는 돌아가련다”라고 작별을 고하셨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목메어 흐느꼈다. 당신께서는 “사람의 마음은 만족을 모른다더니, 어리석구나. 하늘 아래에 죽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어? 내 나이 이미 아흔넷인 걸, 무엇하러 울어?”라고 말씀하시고, 소매를 들어서 내 눈물을 훔쳐주시더니 멀리 떠나셨다. 아! 원통하구나! 세상 사람들은 백 세를 장수 중 으뜸이라고 여기니, 여섯 해만 더 허락해 주셨어도 어머니께서 이 나이를 채우셨을 텐데. 하늘은 어이하여 이 얼마 안 되는 것을 인색하게도 내려주시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오고 가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 있어서 억지로 이승에 남겨둘 수 없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결국 내가 잘 보살피지 못하고 소홀히 모셔서 어머니를 병마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 것이리라!


☑ 지은이 소개

원매(袁枚, 1716∼1797)
중국 절강성(浙江省) 전당현(錢塘縣) 출신으로 지금의 항주(杭州)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외지에서 일을 하며 집으로 생활비를 부쳐주었지만 그마저도 끊기는 경우가 많아 어머니가 혼자 힘들게 가정을 꾸려갔다. 빠듯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어머니는 원매의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원매는 책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다. 스무 살에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 예비시험에 합격했으나 이듬해 실시된 본시험에 낙방한다. 처음으로 큰 좌절을 겪었고 젊은 나이의 호기와 자존심으로 인해 당시 명사들에게 비웃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수도에 계속 머물러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향시 준비를 했고, 23세의 나이로 순천향시(順天鄕試)에 합격했으며, 연이어 이듬해 봄에 회시(會試)까지 합격했다. 같은 해 4월에 300명의 합격자들과 함께 치른 전시(殿試)에서는 5등의 성적을 거두어 결국 한림원(翰林院) 서길사(庶吉士)로 선발되는 영예를 안았다. 큰 뜻을 이룬 원매는 이듬해에 고향으로 돌아와 왕씨(王氏)와 결혼했다. 서길사의 연수 기간을 마치고 치른 시험에서 만주어에 불합격해 최하위의 성적을 기록, 하루아침에 지방 현령직으로 밀려난다. 이때 겪은 아픔은 과거 시험 문장과 만주어에 대한 비판적 시선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33세에 수원(隨園)을 사들이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았다. 그는 수원에서 조용히 은신했다기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살았다. 공경대부에서 상인, 촌로, 여제자들까지 폭넓게 교류했고 이렇게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매문이나 쾌척 등을 통해 욕망의 향유에 필요한 재정을 충당했다. 지나친 쾌락의 추구는 당시에도 이미 비판을 받아 교우 중 한 명인 정진방(程晉芳)은 수원을 떠나는 것이 어떠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 옮긴이 소개

백광준
서울대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중국 남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서울시립대, 한국사이버대학교 등에 출강했고, 현재는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소 HK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근 들어 역사와 텍스트를 종횡하면서 그간 잊히거나 간과되었던 것들을 찾아내는 데 재미를 들이고 있다.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인간 군상들이 만들어낸 자취와 그 사이 결들을 재구성하면서 역사를 도톰하게 읽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텍스트들에서 벌어지는 수사의 변화, 예컨대 담론의 변화나 번역어의 탄생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 및 논문으로는 ≪중국 근대의 풍경≫, <변발에 얽힌 역사와 노신>, <19세기 말 중국 담론의 수사와 번역>, <명대 과거 시험 참고서 출판과 출판시장의 발전>, <엄복의 번역어 탄생과 그 운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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