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1일 금요일

왕유 시선 (王維詩選)



도서명 : 왕유 시선(王維 詩選)
지은이 : 왕유 王維
옮긴이 : 박삼수
분야 : 시
출간일 : 2008년 1월 15일
ISBN : 9788992901178
가격 : 12,000원
규격 : 128*188*20mm  양장 쪽 :136쪽

☑ 책 소개

국내 최초 편역
이 책에는 왕유가 남긴 376수의 시 중에서 66수(편년시 50수, 미편년시 16수)를 역해자가 선별하여 수록했습니다.
각 시의 구성은 한글 번역시, 원시, 해설, 주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해설과 주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해자가 덧붙인 것입니다.

왕유의 자연시는 역관역은(亦官亦隱: 몸은 벼슬하고 있으나 마음은 늘 피세 은둔의 정취를 동경하고 추구하는 삶)의 시기에 집중적으로 지어졌으며 대부분이 은거 생활과 불도(佛道) 사상이 결합된 산물로, 시인의 피세 은둔의 초탈 정신이 짙게 투영되어 있다. 세속적인 욕망은 일찌감치 떨쳐버리고 오직 한가롭고 편안하기 그지없는 시인의 성정(性情)이 시작 속에서 여실히 표현되고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전원 경물이나 산수 풍광의 묘사 가운데서 절로 풍겨나는 은둔적 정취이다.
현존 왕유 시는 고금을 통틀어 최선본(最善本)으로 평가되는 진철민(陳鐵民)의 ≪왕유집교주(王維集校注)≫(이하 ≪교주≫로 약칭)에 의거해 총 308편 376수로 산정(算定)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교주≫를 대본으로 삼아 왕유의 특징적인 시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총 66수(편년시 50수, 미편년시 16수)를 골라 소개하였다. ≪교주≫에서는 왕유 시의 창작 시기를 일일이 고증해 대부분의 작품을 편년(編年) 배열하고, 일부 작품은 미편년(未編年)으로 남겨두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와 동일한 배열 방식을 취함으로써 시인의 인생 역정과 같은 궤도 선상에서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출판사 책 소개

왕유의 시세계
왕유가 견지한 사상은 초년에는 적극 진취적인 유가 사상 위주였으나, 정치적인 실의에 빠지기 시작한 중년 이후에는 불가와 도가적인 경향을 아울러 보이다가 점차 오직 불교에만 극도로 심취하였는데, 이 같은 인생 사상이 그의 창작 정신의 원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백과 두보가 각각 낭만시와 사회시 창작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면 왕유가 당나라 시단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보적인 면모를 보인 것은 바로 자연시의 창작으로, 그를 동진(東晋)의 도연명(陶淵明) 이후 최고의 자연시인으로 평가하는 데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송(宋)나라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는 ‘시중유화(詩中有畫)’, ‘화중유시(畫中有詩)’, 즉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말로 산수수묵화의 대가이기도 했던 왕유 시(詩), 화(畫)의 예술적 경지를 압축 평가함으로써 후세의 절대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왕유의 자연시는 역관역은의 시기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는데, 대부분이 은거 생활과 불도(佛道) 사상이 결합한 산물로, 시인의 피세 은둔의 초탈 정신이 짙게 투영되어 있다. 세속적인 욕망은 일찌감치 떨쳐버리고 오직 한가롭고 편안하기 그지없는 시인의 성정(性情)이 시작 속에서 여실히 표현되고 있는데, 그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전원 경물이나 산수 풍광의 묘사 가운데서 절로 풍겨나는 은둔적 정취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망천집(輞川集)≫ 중의 <죽리관(竹籬館)>은 그윽한 대숲 속의 탈속적인 정취를 묘사하고 있으니, 세상과 동떨어져 고적(孤寂)함이 감도는 깊은 대숲 속에서 거문고도 타고, 휘파람도 불며 살며시 다가와 비춰주는 밝은 달빛과 ‘지음’(知音)의 벗인 양 하나 되어 탈속적인 정취를 즐기는 시인은 이미 ‘해탈’의 경지에 들어 있다고 할 것이다. <산장의 가을 저녁녘(山居秋暝)>은 저녁녘에 한 차례 비가 온 뒤 그윽하고 고아한 산중의 경물을 묘사하였는데, 시정(詩情)과 화의(畫意)가 넘치는 가운데 시인의 고결한 품성과 초탈적 정서가 새롭다. <날씨 갠 후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新晴野望)> 역시 비가 막 갠 후 아득한 들판에 펼쳐진 초여름의 전원 경색(景色)과 농경 생활을 묘사하였는데, 전편에 걸쳐 강조되고 있는 소박하고 평화로우면서도 활력이 넘치는 전원의 생활과 정취는 세속적인 번뇌에서 벗어난 자적(自適)한 삶을 추구하는 시인의 정서가 그대로 배어 있다.
왕유의 시적 재능은 자연시 창작에 있어서는 오히려 이(李), 두(杜)를 능가할 정도의 뛰어난 성취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다방면에 걸쳐 다수의 가작을 남기고 있다.  초년에는 유가적인 인생관에 입각해 매우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경향을 보여 종군(從軍), 변새(邊塞), 호협(豪俠)을 노래하거나 입공보국(立功報國)의 기개를 떨쳐 보이는가 하면, 객관성이 결여된 인재 등용이나 형평성을 잃은 논공행상을 비롯한 정치적 부패상을 풍자, 폭로하였다. 또한 생애 전반을 통해 창작된 증별(贈別)이나 일상생활의 다양한 서정의 시편(詩篇)도 대개 은근하면서도 진솔한 정감의 묘사로 후세에 널리 애송되고 있다. 이를테면 <안서로 출사하는 원이를 송별하며(送元二使安西)>는 송별시의 절창(絶唱)으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인구에 회자된 명작인 바, 전편에 걸친 절묘한 정경(情景)의 융합과 강력한 전형성 그리고 애틋한 정감과 풍부한 함축미는 송별시의 전범(典範)으로 손색이 없다.
왕유의 시는 정치적인 실의와 실절, 가정적인 불행을 딛고 한껏 유유자적하는가 하면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시종 따스한 인정을 베푼 시인의 생활 서정으로, 오늘날 현실 생활 속에서 삶의 고뇌와 갈등으로 지친 현대인에게 ‘해탈’의 지혜를 일러주고,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소개

왕유 王維(중국, 701~761)
왕유(701∼761)는 자(字)는 마힐(摩詰)이고, 당나라 하동(河東: 지금의 산서성)의 하급 관료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다재다능하였다. 집안의 맏아들이었던 왕유는 불행하게도 어린 나이에 이미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여러 동생들과 함께 가난하게 자랐다. 특히 독실한 불교도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접하게 된 불교 사상은 그의 삶과 문예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왕유는 대략 열다섯 살 때 동생 왕진(王縉)과 함께 고향을 떠나 장안(長安)과 낙양(洛陽) 양경(兩京)을 오가며 사회 진출을 꾀하기 시작하였는데, 출중한 문예 재능에 힘입어 귀족 사회의 호감과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개원(開元) 9년(721) 21세에 진사가 되어 궁중의 음악을 관장하는 태악승(太樂丞)에 올랐으나, 같은 해 한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사창참군(濟州司倉參軍)으로 좌천되고 말았다. 왕유는 제주에서의 임기를 마친 얼마 후 다시 기수(淇水) 일대에서 벼슬하다가 오래지 않아 사직하고 현지에서 은거하였으며, 개원 17년쯤 장안으로 돌아와 한거(閑居)하던 중 31세경에 부인과 사별하고 평생을 홀로 살아가게 된다. 개원 22년에는 낙양 부근 숭산(嵩山)에서 은거하였고, 이듬해 봄 마침내 현상(賢相) 장구령(張九齡)의 천거로 우습유(右拾遺)에 등용되면서 좌천의 실의(失意)와 상처(喪妻)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롭게 정치적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개원 24년 겨울 장구령이 시기와 모함 속에 파직당하고 간상(奸相) 이임보(李林甫)가 그 자리에 오르고 말았다.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장구령의 실각은 왕유에게서 일말의 정치적 열정과 이상마저 빼앗아 가버렸다. 뜻하지 않은 소용돌이의 충격으로 의기소침해진 왕유는 이듬해 양주(涼州)로 출사(出使)해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의 막부(幕府)에서 판관(判官)을 겸임하게 되는데, 변방의 풍광과 호정(豪情) 앞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실의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개원 26년 장안으로 돌아와 동(同) 28년에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에 올랐고, 같은 해 겨울에는 영남(嶺南)으로 출사해 남방의 지방관 선발 시험을 주재하였다. 이듬해 장안으로 돌아온 왕유는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하다가 다시 그 이듬해, 즉 천보(天寶) 원년(742)에는 좌보궐(左補闕)에 올랐다. 이후 안사의 난이 일어날 때까지 줄곧 장안에서 벼슬살이를 하였지만 이임보와 양국충(楊國忠)이 온갖 전횡을 일삼는 정치 암흑 상황에서 ‘역관역은’의 삶을 살며 종남산 망천(輞川) 계곡에 별장을 마련해 놓고 틈나는 대로 직접 그곳을 찾아 산수의 정취에 젖으며 한가로이 지내곤 하였다.
천보 15년, 안사의 난이 일어난 이듬해 왕유는 촉(蜀)으로 피난하는 현종(玄宗)을 따라가지 못하고 반군에게 잡혀 보리사(菩提寺)에 갇히는 등 우여곡절 끝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벼슬을 떠맡게 되는데, 이 실절(失節)로 그는 죽는 날까지 줄곧 치욕과 참회의 고통에 시달려야만 하였다. 지덕(至德) 2년(757) 조정에서 양경(兩京)을 탈환한 후 반군에게 억류당해 있으며 그들의 벼슬을 했던 사람을 벌할 때, 왕유는 숙종(肅宗)이 그의 내심의 충정을 인정해 특사를 내림으로써 화를 면하였다. 이후 그의 여생은 오직 자책과 보은의 나날이었으며, 상서우승(尙書右丞) 벼슬자리에서 세상을 떠나니 후세에 그를 ‘왕우승(王右丞)’이라 부르게 되었다.


☑ 옮긴이 소개


 박삼수 울산대 중어중문학과
박삼수(朴三洙)는 경북 예천 태생으로 경북대학교, 중국 대만(臺灣)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각각 중문학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찍이 미국 메릴랜드대학 동아시아언어학과 방문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울산대학교 중문학과 교수로 있으며 출판부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는 ≪시불 왕유의 시≫(세계사), ≪사기(史記)≫(공역, 까치), ≪맹자의 왕도주의≫, ≪당시의 거장 왕유의 시세계≫(이상 울산대학 출판부), ≪세계의 고전을 읽는다≫(공저, 휴머니스트), ≪주역―자연법칙에서 인생철학까지≫, ≪왕유시전집≫(이상 현암사) 등이 있다.


차례

해설··························           9
지은이에 대해·····················    13

편년시(編年詩)

진시황릉을 찾아서···················  19
9월 9일 고향의 형제들을 그리며·· 21
도원행·························         22
식부인·························         26
하북성 성루(城樓)에 올라서········  28
정주에서 묵으며····················   30
이별··························          33
기수(淇水) 가의 전원 풍경·········  36
서늘맞이·······················        38
숭산으로 돌아가며···················  40
변각사에 올라서····················   42
종남산 별장······················      44
종남산·························         46
백원와·························         48
반첩여·························         50
노상(盧象)과 함께 최흥종(崔興宗)의
숲 속 정각(亭閣)을 찾아서··············· 52
콩새··························          53
서시(西施)······················      54
늦은 봄날 규중(閨中)의
상념(想念)··········              56
산속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송별하며··········                58
안서로 출사(出使)하는
원이를 송별하며········          61
그리움·························         63
망천집·························         64
맹성요·······················        65
문행관·······················        66
녹채························         67
목란채·······················        68
궁괴맥·······················        69
유랑························        70
난가뢰·······················        72
백석탄·······················        73
죽리관·······················        74
신이오·······················        75
망천에서 한거(閑居)하며 배적에게 76
여흔과 배적의 방문을 받고·········· 78
배적의 작은 누대에 올라서········· 80
화감사(化感寺) 담흥상인의
산원(山院)을 찾아서···          82
장마 진 망천장에서··················  84
재미스레 망천 별장에 적다········· 86
산장의 가을 저녁녘··················  87
전원의 즐거움·····················    89
남전산 석문정사····················   92
산중에서·······················        95
망천 별장을 떠나며··················  96
초가을 산중에서····················   97
장소부에게······················      99
가을밤에 홀로 앉아·················  101
보리사에 갇혀 있으며 배적에게·· 103
흰 눈 내린 겨울밤 호거사의 집을
생각하며·······                  105

미편년시(未編年詩)

위수(渭水) 가의 농가(農家)·········109
송별·························          111
날씨 갠 후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113
불볕더위에 허덕이며················· 115
근위병의 아내····················    118
향적사를 찾아서···················   120
봄날의 산사(山寺)··················  122
우공곡(愚公谷)····················   124
농가(農家)······················      126
황보악의 운계(雲谿)················· 128
새 우는 산골 개울················· 128
연꽃 만발한 뱃도랑·················129
가마우지 나는 제방·················130
부평초 가득한 못·················· 131
홍모란························        133
잡시·························          134
눈앞의 경물(景物)··················  135

옮긴이에 대해····················    136


☑ 편집 후기

드디어 <지만지고전천줄>이 위풍당당 서가에 등장했습니다. 독자들이 느낀 <지만지고전천줄>의 첫인상이 무척이나 궁금한 요즘입니다. :) 혹시 “어머, 다 똑같은데 제목만 다르잖아?”라고 생각하셨나요? 동서고금, 인문·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지만지고전천줄>이다 보니 그 속사정은 제각기 다르답니다. ≪왕유시선≫은 중국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왕유의 시선집이지요. 시에는 음악성만 감춰진 줄 알았더니, 디자인에 따라 달라보이는 회화성(?)도 감춰져 있었습니다. 매만짐에 따라 시가 한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눈을 피곤하게 하기도 하더군요! 다양한 분야의 원고를 보고, 또 보느라 미감을 잃어가던 저희 편집팀에게 박삼수 선생님께서 넌지시 이 사실을 알려주셨답니다. 역시 선생님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동양고전이라고 해서 꼭 먼지나는 고서와 깨알같은 한자와 씨름해야하나요? 이제 고전도 아름다워질 권리가 있다구요~

☑ 같이 읽으면 더 좋은 지만지 작품

 두보 《두보 시선》, 도연명 《도연명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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