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6일 수요일

허정집 虛靜集

허정법종 虛靜法宗(한국, 1670~1733)

≪허정집(虛靜集)≫의 작자 허정법종은 조선 영조 때의 승려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이중협(李重協, 1681~?)이 지은 <허정당법종대사비명(虛靜堂法宗大師碑銘)>이 있어 그 전모를 알 수 있다. <비명>에 따르면, 스님의 이름은 법종(法宗)이고 호는 허정(虛靜)이며 완산 전씨(完山全氏)로 관서 땅 삼화(三和) 사람이다. 어머니 노(盧)씨는 용이 강림하는 꿈을 꾸고 경술년(庚戌年) 초파일[浴佛日]에 임신을 하여 스님을 낳았는데, 타고난 바탕이 비범하였다.
12세에 옥잠장로(玉岑長老)를 찾아가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스님의 출가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그 무렵 개인의 신변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 뒤 수행을 거듭하여 ‘원돈(圓頓)의 법계(法界)가 너 자신에게 있다(今在汝矣)’고 하는 화엄의 원돈법계설(圓頓法界說)을 공부하다가 크게 깨달았다. 다시 묘향산으로 들어가 월저도안(月渚道安, 1638 ~1715)를 참배하고 장경(藏經)을 두루 공부하였는데, 이 때 나이 20살 남짓이었다.
그 뒤 드디어 월저 스님의 고족제자인 설암추붕(雪巖秋鵬, 1651~1706)을 따라 현지(玄旨)를 듣고 인가(認可)를 받음으로써 그의 법을 이었다. 설암 스님은 월저 스님으로부터 청허(淸虛)→편양(鞭羊)→풍담(楓潭)으로 이어지는 의발을 전수받은 선사였다. 특히 ≪선원제전집도서과평(禪源諸詮集都序科評)≫(2권)·≪설암잡저(雪岩雜著)≫(3권3책)·≪설암난고(雪岩亂藁)≫(2권1책)을 남기는 등 당대 대표적인 선객의 한 분이셨다.
그 뒤 허정 스님은 진상암[眞常]·내원암[內院]·조원암[祖院] 등 여러 절에 머물렀다. 그때마다 법을 배우고자 하는 승려들에게 낮에는 경전을 강의하고 밤에는 참선을 지도하였다. 1708년(숙종 34) 구월산으로 초청되어갈 때, 그를 따르는 문도가 항시 1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 해에 다시 묘향산으로 돌아와 계축년 4월 17일, 남정사(南精舍)에서 입적하시니 세속 나이 64세요, 법랍(法臘) 52세였다. 화장을 할 즈음, 상스러운 빛이 하늘을 밝혔는데 영골(靈骨) 1편(片)과 사리 3과(顆)가 나와 묘향산과 구월산, 그리고 해남 대둔사에 부도(浮屠)를 세워 봉안하였다.

내용 소개          

≪허정집≫은 2권 1책 목판본으로 1732년(영조 8)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에서 개간(開刊)하였다. 권두에 김정대(金鼎大)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저자의 발문과 간기(刊記)가 있다. 영조 8년은 저자가 입적하기 1년 전이다. ≪허정집≫은 조선 불가시문집 중 ≪연담대사임하록≫과 함께 생전에 간행된 보기 드문 경우라 하겠다. ≪허정집≫ 말미에는 문집 간행과 관련한 저간의 사정을 약술하고 있다. (중략)
(중략)≪허정집≫은 틈틈이 적은 게송을 묶었으며, 제자들의 수행을 인도할 목적으로 그것도 제자들의 강권에 의해 인간(印刊)된 것이며, 산중에서만 돌려보는 수준에 그치게 하였다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가 밝히는 문집 간행의 목적이 이러한 만큼 이는 조선조 불교계를 관통하는 의식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문학을 통한 득도(得度)의 달성은 불가시문학의 전반적인 목표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허정집≫은 상·하 2권인데, 상권에는 264편 299수의 시가, 하권에는 31편의 문이 실려 있다. 특히 하권에는 <안국사기(安國寺記)>·<청룡사기(靑龍寺記)> 등 8편의 기(記)와 <백화당형주대사비명(白華堂砦珠大師碑銘)>·<영허대사비명(靈虛大師碑銘)> 등 5편의 고승의 행장과 사찰 중수를 위한 권선문(勸善文), 부모·사승(師僧) 등을 위한 천혼소(薦魂疏), <화엄경후발(華嚴經後跋)>·<유금강산록(遊金剛山錄)>·<속향산록(續香山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끝의 산록(山錄)들은 자연형태와 풍물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금강산기>에는 내․외 금강산의 신비로운 모습이 화려하게 묘사되고 있다. 직접 발로 답사하여 일반인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동천(洞天)·봉만(峰巒)·계곡·폭포·암석 등의 형태와 명칭 등을 세세하게 그려내었다. 간혹 중간마다 나오는 대찰들의 형태는 물론 환경과 역사를 예의 박식함으로 기록해 내었다.
≪허정집≫의 서문을 쓴 김정대(金鼎大)는 허정 스님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대사의 시는 체법이 유염(柔艶)하며 태도가 평담(平淡)하였다. 오온(五蘊)이 모두 공하여 모든 집착이 이미 다하였으며, 자비로운 구름이 온화하고 지혜의 햇살이 곱고 환하니, 이 어찌 시 본래의 성정(性情)이 아니겠는가! 여러 작품들을 모아보니 청원(淸圓)하지 않는 게 없어 진실로 창해승보(滄海僧寶)라 할 만하다.(若師之詩 軆法柔艶 態度平淡 五蘊皆空 諸漏已盡 慈雲靄和 慧日鮮朗 斯豈非詩本性情者耶 集中諸作 无不淸圓 亶可謂滄海僧寶也) 
머리말 중에서        

문학을 통해 선적(禪的) 경지를 그려내는 작업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치열한 자기 수행의 과정과 깨달음의 경지를 한시라고 하는 고도의 지적 그릇 속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허정 스님의 어떤 선시에 비해서도 읽기가 싶다. 담박하면서도 적절한 시어를 배치하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 그러기에 스님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진다. 조선조 선시의 전형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편역자는 그래서 허정 스님의 시를 사랑한다. 본서에는 바쁜 일상 속에 매몰되어 자신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맑은 죽비 소리처럼 마음 한 켠을 울리는 그런 시가 담겨 있다.
본서는 ≪허정집≫ 전체에서 109편의 시문을 가려 뽑았다. 스님의 정신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작품으로 선별하여 그 마음이 오롯이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였다. 허정 스님과 스님의 ≪허정집≫은 그동안 진흙 속에 묻힌 진주처럼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의 무관심 속에 잊혀가거나 그 존재감마저 인식되지 않은 전통 고전들을 발굴하여 세상에 소개하는 일은 편역자에게도 행복한 작업이다.

본문 중에서      

임종게

생전엔 그대가 내 그림자더니
죽은 뒤엔 내 그대 그림자로고.
그대와 나 원래 허깨비 상인걸
누가 참된 모습인지 알 수 없네.
껍질 벗고 초연히 경계 나서니
허공에 떨어져 자취가 없구나.
목인(木人)이 박자 맞춰 니나나 노래하고
석마(石馬)가 거꾸로 타고 절로 돌아가네.
절로 가는 곳 내 자취 잠겼으니
내 자취 잠긴 곳 바로 열반이도다.
참된 열반은 도대체 무엇이더냐.
그 무언가는 또 무엇이더냐.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산중사 山中辭
유거사 幽居辭
한가롭게 읊다 閑詠
월운대사에게 贈雲月大師
회포를 읊으며 내 뜻을 말하다 咏懷言志
초당 草堂
자경 自警
맑은 밤 淸夜
유거 幽居
물외 物外
산에서 살며 山居
고요한 밤 夜靜
아파 신음하다 病吟
백운암 白雲庵
은선대 隱仙臺
금강산 金剛山
참의 권중경의 시운을 빌려 次權參議韻 附原韻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의 시운을 빌려 次伽耶山海印寺一柱門韻
금화산 징광사 金華山 澄光寺
백운산인에게 示白雲山人
호남으로 가는 환몽 스님을 전송하며 送幻夢之湖南
문촌 유처사의 시운을 빌려 次文村柳處士韻
계율을 지키며 護戒
「봄 골짝에 핀 한 송이 꽃」 시운을 빌려 次春谷一花韻
진사 백대문과 처사 황지리와 함께 백사장을 노닐다 지은 시운을 빌려 白進士大文黃處土地理同遊白沙場韻次
운을 빌려 청옥수좌에게 보이다 次示淸玉首座
운을 빌려 육공수좌에게 보이다 次示六空首座
조급하게 배우려는 자에게 示學卞
아파 신음하며 病吟
고향 생각 思鄕
송광사 무용 스님의 시운을 빌려 松廣寺無用大師韻次
월저 스님의 시운을 빌려 敬次月渚大和尙韻
신선을 찾다가 길을 잃고서 訪仙失路
운을 빌려 의진수좌에게 주다 次示義眞首座
운을 빌려 백운 스님을 전송하다 次送白雲子
운을 빌려 내원의 성곡 스님에게 주다 次示內院城谷大師
중악에서 삼남으로 내려간 지 오래도록 오지 않은 이를 그리워하며 憶中岳下三南久不來
운을 빌려 설잠 스님에게 부치다 次寄雪岑
운을 빌려 고향 사람인 거사에게 드리다 次贈同鄕人居士
대공각민 스님에게 示大工覺敏道人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訪隱不遇
운을 빌려 축림 스님을 전송하며 次送竺林
가을 산에 혼자 살며 秋山獨居
운을 빌려 금강산 도일수좌에게 보이다 次示金剛山道一首坐
해문도인에게 示海文道人
고향 생각 望鄕
한양 漢陽
모은 스님과 헤어지며 別慕隱
운을 빌려 식암 스님에게 부치다 次寄息巖
사시사의 운을 빌려 次四時詞
묘향산 구름 집 香山雲舍
한식 寒食
능파희세 스님에게 寄綾坡希世子
자탄 自歎
사군 김일경의 시운을 빌려 次金使君
운을 빌려 수이 스님에게 부치다 次寄守夷
능파희세 스님을 전송하며 送綾坡希世子
고요히 살며 靜居
깊은 산골 洞深
가을 풍경 秋景
삼가 설암 스님의 시운을 빌려 敬次雪嵓和尙韻
하늘 天
땅 地
태양 日
달 月
바람 風
구름 雲
소나무 松
노송나무 檜
묘향산 보현사 香山普賢寺
설암 스님을 애도하며 悼雪巖和尙
삼가 설암 스님의 시운을 빌려 敬次雪巖和尙韻
묘향산 상운암 題香山上雲庵 題香山上雲庵
장난삼아 행각승에게 지어주다 戱贈行脚僧
옛 시의 운을 빌려 次古韻
눈 雪
장난삼아 허영 스님에게 戱示虛影
창파취원 스님에게 贈滄波子翠遠大師
제야에 화초 가꾸기를 권면하는 게송 分歲造花草勸偈
만경대에 올라 登萬景臺
어머니 생신 날 가르침을 생각하며 生辰記慈母敎訓
봄눈 春雪
양관체 陽關體讚山中妙香
옥련환체 玉連環體 勸同徒
측입체(仄入體) 側入體
요체 拗體
안곡스님에게 一二言體 寄安谷
수시체 數詩體
건제체 建除體
자응 스님의 시운을 빌려 次慈應韻
월저대화상을 애도하며 悼月渚大和尙
객지살이 회포를 쓰다 旅窓書懷
제석 除夕
초당 草堂
만월스님에게 부치다 寄滿月
고향에 머물며 산을 생각하다 滯鄕憶山
묘향산 香山
스스로를 위로하며 自遣
한식 寒食
고향을 그리며 望鄕
스님을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서 訪師不遇
운을 빌려 무명도인에게 보이다 次示亡名道人
설암 스님을 추도하며 追悼雪嵒和尙
운을 빌려 우암 스님에게 드리다 次贈牛巖
고향 산을 걱정하며 滯憂關山
임종게 臨終偈
착정기 鑿井記
유금강록 遊金剛錄
속향산록 續香山錄

옮긴이에 대해

출판사 서평      

≪허응당집≫과 더불어 ‘허허(虛虛)’ 시리즈라 할 만하다. 제목은 ‘허허’지만 내용은 ‘실실(實實)’이다. 담백하면서도 평이한 시어로 바쁜 일상 속에 매몰되어 자신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마음 한쪽을 맑은 죽비 소리처럼 울리는 법종의 선시집(禪詩集). 직접 발로 답사하여 금강산과 묘향산의 신비로운 모습을 풍성하게 묘사하고 있는 <유금강록>과 <속향산록>은 보너스.

역자 소개           

배규범
1998년 문학박사 학위(<임란기 불가문학 연구>)를 받은 이래, 불가한문학 연구와 한자교육에 전력하고 있다. 옮긴이는 한자와 불교를 공통 범주로 한 <동아시아 문학론> 수립을 학문적 목표로, 그간 한국학대학원 부설 청계서당(淸溪書堂)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과정(草書課程)을 수료하였으며, 수당 조기대(守堂 趙基大) 선생께 사사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지난 10여 년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한자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사)한국한자한문능력개발원의 한자능력검정시험 출제 및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는 동국대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로 있으며 학술진흥재단의 고전번역 프로젝트와 국사편찬위원회의 ≪承政院日記≫ 교열 및 교감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논저로는 ≪불가시문학론≫, ≪조선조 불가문학 연구≫, ≪역주 선가귀감≫, ≪정관대사 일선시집≫, ≪초의선사 의순시집≫, ≪한글세대를 위한 명심보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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