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6일 수요일

벚나무 동산 Вишневый сад

안톤 체호프  А. П. Чехов (러시아, 1860~1904)

체호프(1860∼1904)의 아버지 파벨은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새벽 기도와 성가대 활동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작가의 유년시절의 지각(知覺)을 지배하게 된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파산하여 온 가족이 모스크바로 떠난 후 체호프는 타간로크에 혼자 남았다. 이때부터 체호프는 독립심과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게 되었다.
1879년 체호프는 모스크바로 올라와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안토샤 체혼테’, ‘내 형의 아우’, ‘쓸개 빠진 남자’와 같은 필명으로 생계를 위해 유머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단편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품들이 대부분이었다.
1885년 12월 체호프는 레이킨의 초대를 받아 페테르부르크로 오게 된다. 거기서 드미트리 바실리예비치 그리고로비치와 알렉세이 세르게예비치 수보린을 알게 된다. 1886년 초 그리고로비치는 체호프의 <사냥꾼>을 읽으면서 그의 위대한 재능이 소모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 작가는 체호프에게 재능을 아낄 것과 굳건한 문학적 입장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 충고 이후 1887년 봄 무렵부터 체호프는 이전과는 다른, 보다 객관적인 작가로 변모하게 된다. 한편으로 수보린은 체호프에게 고정 지면을 내주었고, 경제적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그의 경제적 후원 덕택에 체호프는 원고 마감 시간과 주제의 제약과 같은 현실적 부담에서 벗어나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887년 봄 체호프는 고향인 남부 타간로크를 여행한다. 이 여행을 통해서 탄생된 가장 중요한 작품은 무엇보다도 1888년에 순수문예지 <북방통보>에 발표한 중편소설 ≪초원≫이다. ≪초원≫ 발표의 문학사적 의미는 체호프가 잡지사에서 요구하는 ‘짧은 시간에 써내려간’ 단편소설의 생산에서 탈피하여 본격적인 순수문학(‘두꺼운 잡지’의 문학)에 진입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 작품은 ≪등불≫(1888), ≪사할린 섬(Остров Сахалин)≫(1893)과 더불어 체호프 문학 세계 변화의 이정표가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그래서 많은 체호프 연구가들이 ≪초원≫과 <등불>이 나온 1888년을 체호프 후기 작품 세계의 원년(元年)으로 간주한다.
1892년 모스크바 근교의 멜리호보에 정착한 작가는 왕성한 창작열로 ≪6호실≫(1892), <문학선생>(1889∼1894), <롯실드의 바이올린>(1894), <대학생>(1894), ≪3년≫(1895), <다락이 있는 집>(1896), ≪나의 삶≫(1896), ≪갈매기≫(1896), <농군들>(1897)과 같은 후기 걸작들을 산출했다. 한편으로 농민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톨스토이, 코롤렌코와 함께 기근(饑饉)과 콜레라 퇴치 자선사업을 펼쳤으며, 학교와 병원 건립 등 사회사업에도 참여했다.
1898년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크림 반도의 얄타로 이사한 체호프는 우울과 고독 속에서 나날을 보냈는데,  모스크바 예술극장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와의 결혼으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용무가 있어서>(1899), <사랑스러운 여인>(1899),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899), ≪바냐 외삼촌≫(1899), <골짜기에서>(1900), ≪세 자매≫(1901), <약혼녀>(1903) 등을 발표했다.
1904년 1월 17일 체호프의 생일에 초연된 ≪벚나무 동산≫과 창작 25주년 축하연은 작가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었지만, 그의 건강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같은 해 6월 독일 바덴베이레르(Баденвейлер)로 아내 올가 크니페르와 요양을 떠나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해설               

지만지고전천줄의 ≪벚나무 동산≫은 완역 작품입니다.

 ≪벚나무 동산≫(1903)은 체호프의 마지막 희곡이다. 체호프는 이 작품을 1902년에 집필하기 시작해서 수차례의 개작을 거친 후, 1903년 가을에 완성했다.
이 작품의 무대 상연에 즈음해서 체호프는 배우이자 연출가인 스타니슬랍스키의 리얼리즘과 그의 해석 방식에 상당한 불만을 가졌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1904년 1월 7일, 체호프의 명명일(자기의 세례명과 같은 이름의 성자의 제일)을 택하여 ≪벚나무 동산≫을 무대에 올렸다.
1903년에 발표된 체호프의 마지막 단편소설인 <약혼녀>는 <주교>(1902)에서 드러난 삶에 대한 희망적 시선을 담은 작가의 관념과 철학이 보존되어 있다. 이 두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의 죽음은 새로운 삶의 도래와 인류 발전의 영속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와 같은 성격을 지닌 <주교>와 <약혼녀>의 완성은 체호프로 하여금 ≪벚나무 동산≫의 기본적인 골격을 형성해 나가도록 유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집필된 ≪벚나무 동산≫이야말로 체호프의 사상적-역사적 근간(根幹)을 완성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체호프 예술세계의 최종적 결산인 ≪벚나무 동산≫은 많은 점에서 삶과 현실의 문제를 보다 예술적ᐨ미학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체호프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는 명작이다.
체호프와 그의 희곡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지만, 그의 예술 세계가 지니는 본질적 특성들은 변하지 않는다. 절망 가운데 미소가 있고 암흑 가운데 서광이 있으며, 인간미와 진실성이 있다.
특히 그의 희곡 ≪벚나무 동산≫은 ‘밝기 전에 희미하게 남는 어둠’이라서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다가오는 미래를 향해 강한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체호프는 우리에게 인생은 괴로운 것이지만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각자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능하다면 유쾌하게 일을 해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체호프는 이러한 관념을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서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적확하게 표현했다.
체호프 예술 세계의 제반 특성들과 이 희곡을 통해 표출된 다양한 양상들은 ‘삶과 인간’, 그리고 ‘현실과 문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 풍요롭게 하면서, 우리의 삶의 지평을 확장시켜 준다.
체호프와 그의 예술 세계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과 ‘소통의 한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는데, 특히 체호프의 4대 희곡 작품들은 여러 차원(층위)에서 ‘예술의 자율성’을 획득하고 있고,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독자와 만나면서 ‘적극적인 여백의 미학’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체호프의 희곡은 개개인의 개별적 삶의 구체적이고도 보편적인 상황에 맞추어 매번 새롭게 적용할 수 있고,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현대성’을 담보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벚나무 동산≫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희비극인지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정태적인 것’이라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체호프라는 작가의 경쾌한 희극적 취향이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희비극적 현실과 접선하면서, ‘충돌’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들을 다양한 색깔로 어느 순간 덧입혀 놓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호프의 작품에서는 의미를 찾는 지점에까지 도달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 기존의 의미가 휘발하면서 ‘생성 중인 의미ᐨ새로운 기호’가 자리를 잡으려고 준비한다.
체호프의 창작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일상적 삶의 현실에서의 ‘충돌’은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서 있는 독자에게 늘 ‘새로운 깨달음’을 선사한다. 독자는 이러한 ‘충돌’을 늘 지각하고 되새김질하면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동참하면 할수록, 깊은 울림을 통해 내면적 자기 전환(‘새로운 탄생’)에 도달할 수가 있다.
우리는 ≪벚나무 동산≫을 통해서 정점에 도달한 체호프 예술 세계의 사상적-미학적 특성들을 온전하게 읽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매개로 해서 19세기 말의 리얼리즘과 20세기 초의 모더니즘이라는 2개의 문화 패러다임의 접점에서 생겨난 동시대의 새로운 사상적-미학적 상황도 감지할 수 있다.

≪벚나무 동산≫은 1903년에 동인(同人) 선집 <즈나니에>에 처음 수록되었다. 단행본은 1904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A. F. 마르크스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번역 작업을 할 때에는 모스크바 나우카 출판사에서 발간한 30권의 체호프 전집 중에서 1986년에 나온 13권을 번역 저본으로 사용했다.
이 작품의 한국어 완역판은 1962년 도서출판 성문각에서 백인환에 의해 출판되었다. 이 해에 러시아 문학 전공자들에 의해 체호프의 4대 희곡이 모두 역간되었다(≪갈매기≫, ≪세 자매≫, ≪벚나무 동산≫, 백인환 역, 성문각, 1962; ≪와아냐 아저씨≫, 차영근 역, 성문각, 1962).
번역자는 이 작품의 장르가 희곡인 까닭에 가능하면 우리말 구어체의 결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본문의 배열은 번역 저본으로 사용한 러시아 원전을 따랐다.
러시아 원전의 문장부호는 우리말의 문맥과 대화 상황에 맞게 우리말의 문장부호로 바꾸어주었다.
주석은 러시아 문화의 기본적 특성을 알려주는 범위에서 달았으며, 주석에는 지은이 주와 옮긴이 주가 있다. 지은이 주만 밝혔다.

본문 중에서      
Любовь Андреевна.  О мой милый, мой нежный,  прекрасный сад!.. Моя жизнь, моя молодость, счастье мое, прощай!.. Прощай!..
류보비 안드레예브나.  오, 내 사랑하는, 내 정겹고 아름다운 동산!..
나의 삶, 나의 젊음, 나의 행복이여, 안녕!.. 안녕!..
역자 소개        

강명수
1965년 경북 포항 출생. 1985년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입학. 대학 생활의 절반을 <고대신문>에서 기획 면과 학술 면을 담당하며 보냈다. 동 대학원에서 체호프 후기 단편소설 연구로 석사학위 취득.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아주어과(러시아어담당)에서 강사, 전임강사로 있으면서 군 복무를 대체. 그 후 러시아로 유학해 뻬쩨르부르그 국립대학에서 “안톤 체호프의 사상적인 중편 소설 연구 : <등불>에서 <6호실>로” 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 취득.  고려대학교에서 “가르쉰의 <붉은 꽃>과 체호프의 <6호실>에 드러난 공간과 주인공의 세계”라는 주제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2005년까지 고려대학교(학부)와 중앙대학교(학부와 대학원)에서 러시아 어문학과 문화, 체호프와 똘스또이를 강의했다. 2006년부터 청주대학교 인문대학 유럽어문학부 노어노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체호프,똘스또이,가르쉰에 대한 주제로 20 여 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했고,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체호프의 세계≫(개정판 ≪체호프와 그의 시대≫)라는 학술서를 번역했다. 체호프 선집(총 5권)을 기획하고, ≪체호프 선집4 − 철없는 아내≫를 번역했다. 또한 러시아어 교재 ≪쉽게 익히는 러시아어2≫도 출간했으며, 저서 ≪체호프 문학의 몇 가지 쟁점 : 우리시대의 인간·현실·관념 읽기≫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편집자 리뷰      

≪벚나무 동산≫은 체호프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경제적인 몰락으로 인해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벚나무 동산을 신흥 부자가 된 농노의 아들에게 팔아넘기고, 각기 불안한 생활 속으로 흩어져야 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희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담담히 그려지고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늙은 하인인 피르스의 독백은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