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9일 수요일

허응당집 (虛應堂集)

☑ 책 소개        

보우는 억불정책 속에서 불교를 중흥시킨 순교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선교일체론(禪敎一體論)을 주창하여 선과 교를 다른 것으로 보고 있던 당시의 불교관을 바로잡았고, 일정설(一正說)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본서는 보우 스님의 시문집인 ≪허응당집≫을 편역한 것이다. 스님의 저술로 여러 책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허응당집≫ 상하 2권에는 주로 시를 수록하였고, ≪나암잡저≫에는 문을 수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나암잡저≫를 한데 묶어 총 3권본 ≪허응당집≫이라 하기도 한다. ≪허응당집≫은 1959년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에서 나고야시(名古屋市) 호사문고(蓬左文庫) 장본을 영인한 것이 현재 전래되고 있다. 권두에는 제자 태균(太均)이 쓴 편차(編次)가 있고, 하권 끝에는 1573년(선조 6) 이환(離幻)이 쓴 발문이 있다. 상권에는 오언과 칠언의 절구와 칠언율시·게송 등이 247수, 하권에는 376수가 수록되어 있다. 600여 수가 넘는 양으로 조선조 시승의 작품 수로는 가장 많은 부류에 속한다. 본서에서는 이 중 보우 스님의 선시가 갖는 취향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들로 97편을 선별하였다.
조선조 승려 중 보우 스님만큼 불명예를 안고 산 분도 드물 것이다. 요승이니 괴승이니, 문정왕후와 부적절한 관계이니 하는 수많은 모함들은 역설적으로 보우 스님의 법력을 반증하는 예라 하겠다. ≪허응당집≫을 보면, 스님이 시승으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가졌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불교계를 양 어깨에 짊어진 채 무수한 화살을 피해가던 속에서도 섬세한 감정의 결을 시문 속에 담아냈다. 스님은 논리적인 교리 문답이나 유가 선비들과의 논쟁은 물론 시를 통해서 자신의 감성을 물론 제자들을 위한 권계에 능란했던 탁월한 시승이었다.

☑ 출판사 서평      

선교(禪敎) 양종과 승과제도를 부활시켜 억불정책 속에 고사해 가던 불교를 중흥시킨 걸승(傑僧) 보우. 그러나 그 대가로 유림의 미움을 사 제주도에서 몽둥이 타작을 당해 죽은 비운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지금도 사극이나 역사소설에서 요승이나 괴승으로 묘사되곤 하는 보우의 선시집(禪詩集). 풍문의 안개를 걷어내면 의외로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 지은이 소개

허응보우   虛應普雨 (한국, 1515~1565)
 보우(普雨, 1515~1565). 조선 중기의 고승.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 보우는 법명이다. 15세에 금강산 마하연암(摩訶衍庵)으로 출가하여 장안사(長安寺)와 표훈사(表訓寺) 등지에서 수련을 쌓았다. 1548년 문정대비의 명령으로 봉은사(奉恩寺) 주지가 되었다. 1550년 선교양종(禪敎兩宗)을 부활했고, 도승시(度僧試)를 실시하여 도첩제도(度牒制度)를 부활시켰다. 승과(僧科)를 다시 설치하고, 1555년 춘천의 청평사(淸平寺) 주지로 있다가 다시 봉은사 주지가 되었다. 1565년 문정대비가 죽자 유생들의 상소에 승직을 박탈 당하고 귀양 갔다가 제주목사 변협(邊協)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저서에 ≪허응당집≫과 ≪나암잡저(懶庵雜著)≫ 등이 있다.

☑ 역자 소개  

배규범      
배규범(裵奎範)은 1998년 문학박사 학위(<임란기 불가문학 연구>)를 받은 이래, 불가한문학 연구와 한자교육에 전력하고 있다. 편역자는 한자와 불교를 공통 범주로 한 <동아시아 문학론> 수립을 학문적 목표로, 그간 한국학대학원 부설 청계서당(淸溪書堂)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수당(守堂) 조기대(趙基大) 선생께 사사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지난 10여 년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한자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사)한국한자한문능력개발원의 한자능력검정시험 출제 및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는 동국대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로 있으며 학술진흥재단의 고전번역 프로젝트와 국사편찬위원회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교열 및 교감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논저로는 ≪불가시문학론≫, ≪조선조 불가문학 연구≫, ≪역주 선가귀감≫, ≪정관대사 일선시집≫, ≪초의선사 의순시집≫, ≪한글세대를 위한 명심보감≫ 등이 있다.

☑ 머리말 중에서     

조선시대는 불교계에 있어 암흑기였다. 개인적인 취향을 떠나 국시로서 억불과 숭유가 존재했던 만큼 불교는 유교에 대해 철저하게 고립되고 무시당했다. 자연 유학자는 승려에 대해 상대적인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했었다. 그러한 전통은 사회 곳곳에 남아서 현재까지도 암암리에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종파가 사라짐으로써 완전히 종단이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음에도 불교가 아직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편역자는 그 이유를 조선전기의 선승 허응보우(虛應普雨, 1509∼1565)에게서 찾고자 한다. 실질적으로야 끈질긴 명맥을 지켜왔던 고승들의 힘이지만, 그 자리를 마련한 사람이 바로 보우 스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유학자들은 보우 스님을 미워했다. 결국 저 먼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 몽둥이로 도륙을 하여 앙갚음을 하였지만, 스님이 뿌려놓은 씨앗은 너무도 잘 자랐던 것이다. (중략)

(중략)≪허응당집≫은 한글대장경 속에 ≪나암잡저≫와 함께 완역본이 나와 있다. 비교적 무난한 번역이지만, 어투가 고어체가 가까워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본서는 보우 스님의 정수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선별한 뒤, 최대한 일상어로 바꿔 매끄럽게 윤문 또는 교정함으로써 <지만지고전천줄>의 목적에 부합하고자 하였다. 박영률출판사 박영률 사장 이하 직원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불우했던 조선조 걸승(傑僧) 허응보우(虛應普雨)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길 바랄 뿐이다.

☑ 책속에서          

登悟道山

以道名山意欲觀
杖藜終日苦躋攀
行行忽見山眞面
雲自高飛水自湲

도(道)라고 이름 붙인 산에 가 보고 싶어서
지팡이 짚고 온종일 고생고생 기어올랐지.
가다가 갑자기 산의 참모습을 보았거늘
구름은 절로 높이 날고 개울도 절로 흐르더라.


☑ 차례              

산어(山語) 山語
송라암(松蘿庵) 스님에게 드림 贈松蘿庵僧
다시 마하연(摩訶衍)에 노닐며 重遊摩訶衍
불지암(佛地庵)에 묵으면서 宿佛地庵
원적암[閑上人에게 드림] 圓寂庵贈閑上人
내원암에 묵으면서[默長老에게 드림] 宿內院庵贈默長老
유점사 楡岾寺
꿈에서 깨어 (2수) 夢破餘不勝自幸 快咏一律 以示 心知
회(會), 임(林) 두 제자에게 보이다(2수) 示會林二小師
신거잡영 山居雜咏
참선하려는 마음과 시 지으려는 마음 禪心詩思 爭雄不已
제자를 훈계하며(2수) 警示小師
졸다가 종소리를 듣고서 睡餘聞鍾即事
대장동(大藏洞)에 들어가 흥취를 쓰다 入大藏洞書興
임금께서 여러 지방의 절들을 허물고 계신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2수) 戊戌之秋九月旣望 驚聞聖上以 兼三五之德 燒毁諸方佛寺 不覺血淚沾巾 憾其獨不蒙至治之澤 泣成數律 以示諸友云
영(營)을 쌓은 곳에서 到營築處示諸友
맑게 개인 가을 밤 창가에 앉아 霽夜秋窓坐咏
운(雲)선인이 게송을 구하기에 雲禪人求頌
개울에서 장난삼아 臨溪戱咏
스스로 슬퍼하며 自悲
제자의 죽음을 두고서(2수) 村有白髮老婆 聞余小資之化 卜占吉凶 書送於山 不勝絕倒 即咏二絕 以示同行禪友
숭(嵩) 스님의 시운을 빌려(2수) 次嵩師韻
감(鑑) 선인에게 선종과 교종의 깊고 얕은 관계를 답하며(2수) 寄鑑禪人竝答禪敎深淺之問
곡기를 끊은 노승에게 寄辟穀老僧
오도산(悟道山)에 올라서 登悟道山
묘향산(妙香山)으로 가는 신(信)법사를 전송하면서 送信法師之妙香山辭
세상을 탄식하는 시를 지어 벗에게(2수) 述嘆世詩示心知
지능참봉(智陵參奉)의 시운을 따서 次智陵叅奉韻
관직을 사퇴하고서 지내는 늙은이가 시를 청하기에(2수) 又請作乞骸逸老詩依請以賦
어떤 벗이 바른 말로 나에게 따지기에 有朋以直言諍…
명(明),웅(雄) 두 벗에게 明雄二友
창을 열고 봄을 감상하다 開窓賞春
띠풀집을 다 짓고서 (2수) 述落成茅屋詩二首
가을 산에서 달을 보며 秋山對月
내가 곡기를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韓)진사가 식량을 보내주어… 韓上舍聞余辟穀惠料有感
산중에서 山中即事
비 개자 기쁜 마음에 喜晴
어떤 손님이 배움을 구해 산을 찾아왔기에 有客求學到山
보(寶) 스님과 헤어지면서 別寶上人
학계(鶴溪) 송월정(松月亭)에서(2수) 題鶴溪松月亭二首
우연히 읊다 偶吟
가을을 노래하다 賦秋
낙민정(樂民亭)의 시운을 빌려서 次樂民亭韻
조실전[祖殿]에 누워 자며 宿祖殿
금강산에 가려는 어떤 스님에게(2수) 有僧欲向金剛 以詩示之
동지(同知) 정헌우(鄭軒右)에게(2수) 奉似鄭同知軒右
길에서 풍병[風恙]이 들어…  歲在戊申秋九月 予自嶺北 移向湖南 路纒風恙 曆入天寶山檜巖寺之遮眼堂 臥經數月 意謂必逝 忽蒙天 扶僅得餘生 聞奉恩明谷 師祖 以老病辤 欲使予代之云 即述一偈 以露病懷
망천봉(望天峯)에 올라  上望天峯 在寺北
저자도(楮子島)를 찾아서 訪楮子島      
섬 안에서 느낀 바 있어 島中即事      
불교를 배척하는 상소를 올린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驚聞滿朝震驚上疏排佛 因述二偈
사은숙배(謝恩肅拜) 후에 절로 돌아와 恩肅拜後還寺書偈
용문사에 이르러 쟁반의 부드러운 채소를 보고 到龍門見盤中軟蔬述懷
다시 도솔암(兜率菴)을 노닐다 重遊兜率菴
도솔암에서 장안사(長安寺)에 이르러 自兜率到長安示衆
묵언수행을 하는 스님에게 示默言僧
스님이 되려는 어떤 나그네에게… 有客自言 吾見棄於父欲爲僧 以詩止之
큰 여울 가에 배를 대고 泊大灘上
예전에 살던 곳을 생각하며 懷舊隱      
연정(蓮亭)에서 손님을 보내면서 蓮亭送客
계율을 범한 어떤 스님에게… 有僧犯律 以溷淸衆 因書一偈
목욕하다가 머리카락이 모두 세었다는 말을 듣고 因浴聞頭髮盡華
마군들이 나를 참소한다는 말을 듣고 病枕聞魔訴 余强揮病筆
길을 막는 대중들에게 一日貧道 以衰病辭 向故山 大衆立庭遮留
양생(養生)을 권하는 제자들에게… 一日小師輩 見我頭髮盡白曰 吾見養生方 凡林下人每日淸晨 課食松栢葉 而不輟三年 則白髮還黑 壽延千年 終至登仙 師本無事人也 如方試之 則白髮可除 神仙可期 冀從此始何如 予不覺絶倒 因述一偈
옥에 갇혀 죽은 마승(魔僧)을 보고(2수) 聞魔僧繫獄而死 外議騰紛 即述 二偈
흥에 겨워 遣興
지팡이 두드리며 돌아가며……(3수) 江涵秋影 鴈報霜寒 引興薜荔 夢極烟霞 杖扣臨歸 書偈三首 以示大衆
안반(案槃) 여울목에서 묵으며 宿案槃灘頭
무위자(無爲子)의 시운을 따서 次無爲子韻
어떤 손님이 와서 산중의 즐거움을 묻기에(2수) 有客來問山中之樂 以偈示之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듣고…(2수) 聞世之人以余病退仙洞 更築臺壇 晦養餘生 稱知行藏 善隱現云 即述二偈
청평에서 읊은 시(8수) 淸平八咏
        반석(磐石)에서 손님을 보내며 盤石送客
        용담에서 폭포를 보다 龍潭看瀑
        남지(南池)에 비춰진 그림자 南池照影
        서천(西川)에서 납의를 빨며 西川洗衲
        법당에서 나라님께 예를 올리며 天壇禮象
        천천히 걸으며 적적함을 달래다 逍遙遣寂
        선동(仙洞)의 그윽한 곳을 찾아서 仙洞尋幽
        고요한 식암(息菴)에서 息菴觀靜
제자들에게 示小師輩幷序
광석산(廣石山)에서 題廣石
산다화(山茶花)를 보면서 見山茶花
지헌만덕(智軒萬德) 스님이 묻길래 智軒萬德 訪余於淸平之祖室 求存心養性之要 及臨衆處事之方 以偈示之
영동(嶺東)을 향하던 중 수인(水仁)을 지나며 向嶺東過水仁途中
남교관(南郊館) 동헌(東軒)에 붙은 시의 운을 빌려 次嵐郊館東軒韻
낙산잡영(9수) 洛山雜咏
스님이 찾아와준 것이 기뻐 喜學觀禪子來訪書懷贈別
민(閔) 진사의 시운을 따서 次閔上舍來韻
선(禪)이야기 끝에 談禪餘書一偈 示小師等
의옥(義玉)스님에게 示義玉禪人
현화사(玄化寺) 스님에게 示玄化士
취한 신선에게 酬醉仙
즉흥시(2수) 即事
응중덕(應中德)이 지은 시축에 삼가 화답하다 奉和應中德軸韻
영지(映池)에서 이학만(李學卍)을 생각하며 映池懷李學卍
발가벗고서 곡기 끊은 스님에게 示裸衣絶穀僧
산중의 선객들에게 示山中禪客
화엄(華嚴)의 오묘한 바탕을 칭송하다 華嚴不思議妙體頌
화엄의 오묘한 작용을 칭송하다 華嚴不思議妙用頌
옛날 은거하던 곳을 생각하며(3수) 懷舊隱(三首)
한가한 때 게송을 지어 보이다(2수) 閑中書一伽陁 示小師等 做工勉力二首
임종게 臨終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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