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일반교육학 Allgemeine Pädagogik


도서명: 일반교육학 (천줄읽기)
저자 : 요한 프리드리히 헤르바르트
역자 : 김영래
출판사 : 지식을만드는지식
정가 : 12000원
출간일 : 2008년 4월 15일
쪽 : 205
규격 : A5
ISBN : 978-89-6228-068-5
제본 : 양장본
분야 : 인문 > 교육이론




☑ 책 소개

이 책은 헤르바르트의 ≪일반교육학≫(Allgemeine Pädagogik aus dem Zweck der Erziehung abgeleitet, 1806)을 저본으로 하고, 기존의 완역본인 ≪헤르바르트의 일반교육학≫(학지사, 2006)을 토대로 핵심적인 내용을 발췌하여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전체에서 약 35%를 발췌하였다.
이 책의 저자 헤르바르트(Johann Friedrich Herbart, 1776∼1841)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였으며, 특히 1809년부터 1833년까지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 칸트(I. Kant)의 후임으로 재직했다. 헤르바르트는 그의 나이 30세에 ≪일반교육학≫을 발표함으로써 서구에서 최초로 교육학을 근대적 의미의 학문으로 정립한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의 교육관은 인간을 개별적 고유성(Individualität), 자유(Freiheit), 다면적 흥미(Vielseitiges Interesse)를 지닌 존재로 보는 그의 인간관에 근거하고 있다. 일반교육학이란 모든 종류의 교육활동에 ‘일반적인’, 공통적인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는 교육론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이 책에서는 먼저 교육의 목적에 대해 논의하고 있고, 이에 근거한 교육과정, 교수ᐨ학습, 도덕교육에 대한 일반적인 설계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일반교육학에서는 교육의 각 영역이 수업 안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적 수업’ 이론이 제시되고 있으며, 이러한 수업을 이끌 수 있는 교사의 자질과 역할도 논의되고 있다. 요컨대 교육의 전체영역을 포괄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이 갖추어진 교육자에 의해 모든 종류의 교육활동이 유기적인 상호 연관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때만이 인간다움을 조화롭게 양성하는 수업, 즉 ‘교육적 수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교육적 수업의 기본적인 틀을 그려보고자 하는 것이 일반교육학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 저자 소개

요한 프리드리히 헤르바르트는 1776년 5월 4일 올덴부르크에서 법률가이며 지방정부의 법률고문인 아버지 토마스 게르하르트 헤르바르트, 어머니 루치아 마르가레테 헤르바르트(출생명 쉬테) 사이에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환경을 타고난 헤르바르트는 어머니의 교육열에 힘입어 어려서부터 다양한 사교육을 받았다. 지적인 수업은 물론이고 다양한 음악수업을 받아 여러 악기를 잘 다루었는데 특히 피아노를 잘 다루어 수준급의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작곡법까지 배워 뒷날 피아노소나타를 작곡할 정도였다. 1788년부터 올덴부르크의 라틴어학교(김나지움)를 다녔는데, 그는 특히 고전어와 수학, 자연과학에 열심이었으며, 또한 그 당시 명성이 높던 칸트의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794년부터 예나에서 부모의 희망에 따라 법학공부를 시작했으나, 철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당시 예나대학에 있던 피히테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얼마 안 가서 거리를 두게 되었다. 1797년 봄 스위스 베른의 주지사 슈타이거의 두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가정교사로 입주했으며, 이 시기에 스위스에서 민중교육의 실천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페스탈로치를 만나보고 그의 교육관과 교육실천에 감명을 받았다. 1802년 괴팅겐으로 가서 같은 해에 박사학위와 교수자격을 취득하고, 1805년부터 철학과 교육학 조교수로 활동했다. 1806년 ≪일반교육학≫과 ≪형이상학의 주안점들≫이 출판되어 그의 철학적ᐨ교육학적 전체체계가 확립되었다.
1808년 칸트의 후임으로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정교수로 취임하여 철학의 여러 분야에 대해 가르쳤으며 1810년에는 새로 개설된 교육학과를 이끌었고, 일종의 부속학교를 설립·운영했다. 1811년 영국에서 이주해온 상인가문의 딸 Mery Jane Drake와 결혼하였다. 이후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쳤는데, ≪철학입문 교본≫, ≪심리학 교본≫, ≪학문으로서의 심리학≫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들이다.
1831년 사망한 헤겔의 후임으로 베를린대학으로 옮기고자 했으나 프로이센정부가 다른 학자를 헤겔 후임으로 임명하자 실망한 헤르바르트는 (프로이센에 속해 있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을 떠나서 괴팅겐대학으로 옮겼다. 헤르바르트가 1837년 철학부의 학장을 지낼 당시, 새로 등극한 하노버 왕이 요구한−반개혁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충성서약을 거부한 7인의 교수들(이들은 ‘괴팅겐의 7인’이라고 불리면서 영웅대접을 받았고, 그들 중 2인은 그림형제)에 대해 거리를 둠으로써 교수단과 학생들의 냉대를 당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헤르바르트는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가 1841년 8월 14일 65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괴팅겐의 시립묘지에 안장되었다.


☑ 옮긴이

김영래는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부터 서울 소재 한성고등학교에서 10년간 독일어과 교사로 재직했다. 1994년부터 독일 마인츠대학교에서 교육학, 철학, 독문학을 공부하고 철학박사(교육철학) 학위를 받았다[박사학위 논문: <Der Begriff der Bildung bei Immanuel Kant, Max Scheler und Theodor Ballauff>(칸트, 셸러, 발라우프의 도야개념)]. 2004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이의 관심분야는 독일 교육사상과 교수이론, 그리고 인성교육 패러다임 연구 등이다. 저서로는 ≪칸트의 교육이론≫(학지사, 2003)이 있고, 역서로 ≪헤르바르트의 일반교육학≫(학지사, 2006)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체계적 교육학의 필요성과 가능성>(2006)등 다수가 있다.


☑ 책 속으로

Alle müssen Liebhaber für alles, jeder muß Virtuose in einem Fache sein.
Aber die einzelne Virtuosität ist Sache der Willkür, hingegen die mannigfaltige Empfänglichkeit, welche nur aus mannigfaltigen Anfängen des eigenen Strebens entstehen kann, ist Sache der Erziehung.

모든 사람은 모든 분야에 대한 애호가여야 하며, 누구나 하나의 분야에서 전문가여야 한다. 각각의 전문성은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에 달려있지만, 반면에 개인의 다양한 추구를 실마리로 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다양한 수용성[= 다면적 흥미]의 양성은 교육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 출판사 서평

서구에서 최초로 교육학을 근대적 의미의 학문으로 정립한 헤르바르트의 대표 저서다. 그는 다면적인 흥미의 양성과 인간다움을 조화롭게 양성하는 수업만이 진정한 ‘교육적인 수업’이라고 말한다. 이미 200여 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오락가락하는 우리의 교육제도가 지녀야 하는 철학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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